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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땅이

2025년 한 대학원생의 실존적 위기

"2025년 말에는 mid-level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을 AI로 대체할것" - Mark zuckerberg
"AI가 일자리 48%를 대체할 것" - Jensen Huang

 

위 발언은 IT 테크 기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들어봤을 Meta와 NVIDIA의 CEO 저커버그와 젠슨 황이 2025년에 들어 한 이야기이다. 이러한 발언은 2010년 중반부터 시작된 AI의 기하급수적인 성장이 기저에 깔려있다. 물론 이들의 발언에 비지니스적 측면이 크게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배제할 순 없겠지만... 아니 뗀 굴뚝에 연기가 나랴...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시지프 신화 - 알베르 카뮈

 

이러한 시점에 인간들은 그들의 존재 의미에 대한 실존적 위기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고양이가 들어가 식빵을 굽기 위해 만들어진 택배 상자와 달리 인간은 세상에 던져진 이유에 대해서 스스로 사유하여 답을 찾아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왜 사는가? 당신은 살 가치가 있는 존재인가? 해당 질문은 대학원생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질문이다.

 

이 글은 약 한 달전 열린 인공지능 top-conference NeurIPS에 참석한 뉴욕대학교 조경현 교수님이 블로그에 글을 하나 게시하셨다. 해당 게시글의 제목은 i sensed anxiety and frustration at NeurIPS24 , "뉴립스 2024에서 걱정과 좌절감을 느꼈다"이다. 원문을 읽어보길 권장하며, 한국어가 더 편하신 분들은 이 글 혹은 아래 더보기 를 눌러 ChatGPT가 한국어로 번역한 버전을 읽어보길 권장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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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 (아래의 글은 필자가 ChatGPT에게 조경현 교수님의 "i sensed anxiety and frustration at NeurIPS’24"를 한국어 번역을 요청하여 얻은 결과로 원본과 내용이 다를 수 있습니다)

 

지난주 NeurIPS '24에서 특히 두드러졌던 점은, 졸업을 앞둔 박사 과정 학생들과 박사 후 연구원들이 느끼고 표현한 불안과 좌절감이었습니다. 이들은 5년 혹은 그 이상 전에 박사 과정을 신청할 당시 예상했던 것과는 크게 달라 보이고 느껴지는 현재의 취업 시장에 혼란스러워하고 있었습니다. 그중 일부는 제가 지도하고 있는 박사 과정 학생들이나 박사 후 연구원들이기도 해서, 저는 최근 인공지능 연구와 개발 분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혹은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잘 짜여진 글이라기보다는 제 생각을 흘러가는 대로 적은 글일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제가 잘 짜인 블로그 글을 쓴 적이 얼마나 있었는지는 의문이지만요).

지난 10년은 기계 학습, 더 넓게는 인공지능에 있어 흥미로운 시기였습니다. 2010년경 음성 인식을 시작으로, 딥러닝은 이미지에서 객체를 인식하거나 기계 번역과 같은 다양한 어려운 문제와 실용적인 문제들에서 기존 기술의 한계를 넘어선 극적인 발전을 보여주었습니다. 2014년쯤에는 딥러닝이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것이 분명해졌고, 모든 주요 기업들, 기술 기업뿐만 아니라 다른 산업군의 기업들까지도, 이 혁명에 참여하고 그로부터 이익을 얻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딥러닝은 주류 기술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딥러닝의 기본 개념과 기법을 진지하게 가르치는 학부 커리큘럼은 거의 없었습니다. 실제로, 당시의 많은 기계 학습 및 인공지능 강의에서 인공신경망은 단순히 지나가듯 언급되는 정도였습니다. 이로 인해 딥러닝 인재에 대한 수요와 공급 사이의 큰 불균형이 생겼고, 이 혁명을 다른 누구보다 빨리 감지한 기업들은 전 세계 소수의 연구실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들을 공격적으로 채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딥러닝을 진지하게 연구하던 연구실이 소수에 불과했기 때문에, 해당 연구실의 졸업생뿐만 아니라 교수들까지도 치열한 경쟁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치열한 경쟁은 자연스럽게 딥러닝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박사 학위 소지자들의 보상 수준을 크게 높였고, 인공지능 분야 내에서 학계와 산업계 간 보상의 격차를 더욱 벌려놓았습니다. 이로 인해, 대학들이 이러한 인재를 채용하여 학생들을 교육하기가 매우 어려워졌습니다. 사실, 저는 2010년부터 2015년 사이에 인공신경망을 연구하며 박사 학위를 받은 소수 중 한 명으로, 종신직 트랙 교수로 대학에 합류했던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이는 결국 인재 공급을 확대하는 데 큰 지연을 초래했습니다. 반면, 수요는 계속해서 급증했습니다.

이 치열한 경쟁의 흥미로운 부작용 중 하나는, 기업들이 이러한 인재들을 직접적으로 매출이나 이익에 기여하지 않을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채용했다는 점입니다. 이 기업들은 필연적이고 임박한 혁명을 준비하기 위해 그들을 채용했고, 이들 중 다수는 연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허용되었습니다. 즉, 그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를 선택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출판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사실상 학계 연구와 비슷한 위치였지만, 2~5배 더 나은 보상, 외부에서의 가시성, 그리고 강의나 행정 업무, 끊임없이 연구비를 신청해야 하는 부담 없이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정말 환상적인 기회였죠!

이러한 상황은 대학생이나 고등학생 (어쩌면 중학생)들에게도 주목받지 않을 리 없었을 겁니다. 인공지능이라는 분야 내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주제를 연구하며 놀라운 수준의 재정적 보상, 편안한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기회는 인공신경망에 관한 학술 논문을 발표한 박사 학위 소지자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로 인해 인공지능 박사 과정에 지원하려는 신청자들이 급증하게 되었습니다.

지원자가 많아졌다고 해서 박사 과정 학생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박사 과정 학생의 수는 지원자 수가 아니라, 지도할 수 있는 교수의 수에 의해 제한되기 때문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15년 전만 해도 인공신경망을 진지하게 연구하던 연구실이 소수에 불과했지만, 2016년쯤에는 많은 교수들이 자신들의 연구실을 딥러닝 연구실로 전환했고, 대규모로 박사 과정 학생들을 받으며 연구실을 적극적으로 확장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인공지능 인재 양성 체계를 잘 구축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많은 뛰어난 학생들이 박사 과정에 지원하고, 인공지능 분야 교수들이 이 뛰어난 학생들을 받아들여 차세대 박사 학위를 가진 연구자들로 양성하며, 소수의 주요 기술 기업과 기타 회사들이 이들을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보상과 연구 자유를 제공하며 채용했습니다.

하지만, 이 체계는 지속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뒤늦게 돌아보면 이는 꽤나 자명한 일이었습니다. 이 체계가 계속되려면 딥러닝이 5년 안에 산업(혹은 사회 전체)에 혁명을 가져올 수 있는 기술로 남아 있어야 했으며, 매년 5년 안에 그런 혁명이 일어나야 했습니다.

 

딥러닝은 지난 10년 동안 이미 엄청난 혁신을 이루어냈습니다. 이는 확실히 인공지능을 상업적으로 매우 유용한 기술로 만들었고, 기업들은 이를 성공적으로 도입하여 제품의 품질과 운영 효율성을 극대화했습니다. 하지만 딥러닝의 초기 성공을 이끌었던 저명한 연구자들의 주요 연구 결과는 이제 대부분의 대형 기업에서 이미 실행되고 있거나, 더 이상 혁명적이지 않을 만큼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날의 딥러닝은 기본적으로 더 이상 혁신적인 도구가 아니라, 매우 강력한 공학 도구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는 기술 성숙도 측면에서는 큰 진보이지만, 동시에 다음 큰 혁명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혼란을 야기했습니다.

 

기업의 관점에서 보면, 5년 전과는 매우 다른 고용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전 세계에 소수의 연구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수한 연구자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훨씬 더 많은 수의 박사 학위 소지자들이 시장에 나와 있으며, 이들은 딥러닝을 포함한 다양한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깊은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또한, 많은 기업들이 이미 딥러닝을 활용한 시스템을 구축했기 때문에, 이제는 새로운 연구보다는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시스템 유지 및 관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연구 중심 고용에서 실용적인 응용 중심의 고용으로 점차 초점이 이동했음을 의미합니다.

이 변화는 박사 학위 소지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를 야기합니다. 딥러닝 연구의 황금기에 박사 과정을 시작한 많은 학생들은 학계 또는 산업계에서 연구자로서의 미래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취업 시장은 당시의 기대와는 크게 다릅니다. 연구 중심의 고용 기회는 줄어들었고, 기업들은 보다 실용적이고 응용 가능한 기술을 가진 인재를 찾고 있습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연구를 즐길 수 있는 자유와 엄청난 보상"이라는 초기의 약속이 더 이상 보편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이는 "연구 기회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전히 많은 기업들이 연구를 수행하고, 연구자들에게 기회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그 기회는 이전보다 훨씬 제한적입니다. 이는 단지 산업계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학계에서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많은 대학들이 박사 학위 프로그램을 확장하며, 졸업생 수는 증가했지만, 교수직과 같은 연구 중심의 직책은 그와 비례하여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이 글을 마무리하며, 저는 지금의 상황이 자연스러운 진화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은 이제 단순한 연구 주제를 넘어 실질적인 공학적 도구로 자리 잡았고, 이는 학문적 열정과 실용적 응용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할 필요성을 시사합니다. 현재 시장에서의 혼란과 박사 과정 학생 및 연구원들의 좌절감은 결국 새로운 시대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연구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유연성과 적응력입니다. 과거의 성공적인 모델이나 기대에 집착하기보다는, 현재와 미래의 요구를 이해하고 이에 맞게 자신의 경로를 재설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는 어려운 작업일 수 있지만, 동시에 개인과 분야 모두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줄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짧게 요약하자면...

(1) 2010년 중반, 비주류 분야였던 딥러닝 분야의 괄목할만한 빠른 성장과 그 기술의 잠재력은 시장에서 높은 가치로 평가받기 시작함.

(2) 기업은 전문가들을 매우 좋은 조건을 내걸며 인재풀을 채우기 위해 혈안이 되기 시작함.

(3) 당시 딥러닝을 전공한 박사들은 매우 희소하였기에 기업들은 본인들이 당장 인공지능 전문가가 필요하지 않더라도 일단 고용하는 행태가 팽배함. (혁신을 위해 인재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재를 구해놓고 혁신을 고민하는... 본인은 주객전도(主客顚倒) 되는 상황을 싫어한다)

(4) 돈도 잘주고 취업도 잘되니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대학원생과 연구실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남.

(5) 10년이 지난 지금, 더 이상 딥러닝 그 자체는 크게 혁명적이거나 새로운 것이 아니게 됨.

(6) (4)에서 늘어난 인력들은 시장에 포화되기 시작. 반면 기업에서는 (5)로 인해 슬슬 학문적인 측면을 넘어 실용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되기 시작함.

(7) 현재 석/박사 과정중의 학생들은 오들오들 오돌뼈.

https://github.com/lixin4ever/Conference-Acceptance-Rate (Acceptance rates for the top-tier AI-related conferences)

위 사진은 AI 관련 학회들의 논문 합격률 (acceptrance rate)과 제출된 논문의 숫자를 시각화 한 것이다. 위에 언급된 학회인 Neurips는 이제 한 해에 만편이 넘는 논문이 들어오는 Mega-Conference가 되었고, 이러한 학회들의 마감 기한이 다가오면 종종 논문을 작성하는 Overleaf 서버가 다운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물론 제출된 모든 논문이 출판되는 것은 아니다. 한 학회의 Acceptance rate을 25%, 제출 편수를 10,000편이라고 가정하면 2,500편 정도만이 출판된다고 할 수 있다. 아니, 2,500편이나 출판된다. Neurips, CVPR, AAAI, ICML 4 학회만 잡아도 1년에 논문이 만 편이나 쏟아지는 셈이다. 1년 365일 동안 하루에 평균 27편 이상 읽어야 그 해 나온 논문들을 모두 follow up할 수 있다.

 

이러한 엄청난 숫자의 submission과 논문의 출판은 이점과 단점이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AI Conference는 상대적으로 성능 향상이 크지 않더라도 논문이 출판되며 이러한 작은 지식들은 쌓이고 쌓여 거시적인 관점에서 큰 발전을 가져왔다. 다음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대학원생의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학회도 많고, 논문이 많이 출판되니 어느정도 성과를 내기가 수월하다. 물론 top-tier 컨퍼런스에 논문을 내는 것은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최근 국내외 기업들의 신입 석/박사 인력들의 resume는 과거의 그것에 비해 양적으로 훨씬 높은 퀄리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이러한 생각에 힘을 더하게 한다.

 

반면 제출되는 논문의 숫자가 너무 많아지니 리뷰의 퀄리티가 떨어지고, 또한 출판되는 논문들의 재현성이나 반복성, 실용성의 측면에서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나아가 퍼블리케이션의 정량적 측면의 인플레이션 점도 단점으로 꼽을 수 있겠다. 요즘 인공지능 분야는 double digit publication이 아니면 임용시장에 명함도 못내민다는 이야기도 돈다. 나는 저 그래프를 보면 포화된 AI 인재 채용 시장이 떠오른다. 

 

쏟아지는 인공지능 분야 논문들에 대한 풍자

 

나는 정통적인 모바일 컴퓨팅 및 시스템/어플리케이션 분야에 논문을 투고한다. 다만 그 주제는 주로 인공지능이 중심이 된다. 나는 우리 분야의 가장 큰 매력은 실생활에 가장 가까운 분야 중 하나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러한 연구들은 실제 환경에 대한 실험과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무언가를 만들어 내야한다는 점에서 논문의 사이클이 매우 긴 편이다. 예를 들어보자면 미시간 대학교 Pei Zhang 교수님은 박사과정 시절에 케냐의 얼룩말들의 생태계 파악을 위한 ZebraNet이라는 시스템을 개발하였다. 얼룩말들을 tracking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 및 최적화 하고 실제 케냐에 가서 얼룩말들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했다. 나는 이 논문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을지 감히 예측도 할 수 없다. 나에게 모든 자원을 줄테니 똑같은 시스템을 맨땅에서부터 다시 구축하라고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것 같다. 이는 내가 인공지능 분야로 도피 아닌 도피를 하게 된 계기일 것이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이렇게 실용성을 강조하는 분야에 부대끼며 그 정반대에 있는 연구들을 다룬 덕일까. 나는 작년부터 조경현 교수님의 글과 비슷한 고민을 했던 것 같다. 내가 하는 연구는 새로운 것이긴 하지만, 그 누구도 이 연구를 실제 세상에 적용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사기꾼 증후군이라고 해야할까, 한 분야를 공부하고 고민하다보면 그 기술의 한계점과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된다. 실제로는 말도 안되는 가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일단 연구를 한다. 예를 들어 일상생활중 스마트폰이 수집한 데이터를 학습하는 시스템을 만든다고 하자. 일반적으로 그 데이터에는 정답 레이블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그 데이터들에 정답 레이블이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논문을 쓴다. 실제 그 기술은 정답 레이블을 얻을 수 없으면 동작하기 어렵고 따라서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일단 졸업을 해야하고, 실적을 쌓아야 하고, 논문을 써야하고, 살아야 하니 찝찝함을 애써 외면하고 계속 코드를 짜고 글을 쓴다.

 

완성도가 없는 테크닉은 테크닉이 아니듯, 쓸모 없는 공학은 공학이 아니다?


나는 (저커버그와 젠슨황의 말처럼) 인공지능에게 대체될 인재인가? 내 연구들은 정말 가치가 없는가? 나는 왜 연구를 하는가? 나아가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 이 맞물려 돌아가는 실존에 대한 의문 굴레는 결국 흔들리지 않고 기댈 수 있는 무언가에 대한 필요성을 재고하게 한다. 나는 49%의 scientist, 51% engineer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실용적인 것을 만들어 내야한다. 다만 단순히 실용적인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은 나보다 인공지능들이 훨씬 잘 할 것이다. 나는 새롭고 재밌고 멋진 문제를 찾고 풀어야한다. 쓸모없고 새롭기만 한 것은 쓸모가 없다. 새롭고 재미있는 기술을 연구해서 그 실용성을 증명할 것. 내가 남은 박사과정동안 직면한, 풀어야 할 문제이고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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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incremental한 연구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다만 그 의미가 실생활까지 나아갈 수 있는 방향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분야를 연구해도 누군가는 실생활에 도달할 수 있는 연구를 하더라. 내가 부족한 탓이다.

 

2025년 1월 17일

 

p.s. 불면이 다시 도졌다. 밤에 못자고 새벽쯤 잠드니 불면이라기보단 수면 장애가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침대에 누우면 연구든 뭐든 생각 안하고 편하게 잘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한국가면 나아질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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