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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에에엥?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13기: 부리부리 3분 대작전 감상 (1) - 현실과 시뮬라크르, 메타버스?

넷플릭스, 디즈니+, 티빙, 왓챠 등 OTT의 발전 덕에 지나간 드라마나 영화를 비롯한 여러 영상 컨텐츠들을 즐길 수 있는 요즘이다. 그중 적잖은 시간을 투자하는 컨텐츠는 바로 짱구는 못말려...~ 어릴 때부터 짱구를 많이 봐왔는데, 당시에는 그냥 짱구의 코믹스럽고 장난 꾸러기 같은 면이 좋고 재미있어서 즐겨봤다면, 머리가 굵어지고 보는 짱구 극장판은 종종 재미를 넘어 메시지를 던지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어른 제국의 역습, 로봇아빠의 역습 등등... 나머지도 시간나면 인상 깊었던 부분을 기록해보겠다) 즐겨보는 것 같다.

최근에 돌려본 극장판은 '13기 부리부리 3분 대작전'! 대충 내용은 세상 시공간에 틈이 생겨서 벌어진 시공간 사이에서 괴물들이 나타나 세상을 파괴하는 상황. 그 벌어진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막기 위해 미래맨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미래맨은 짱구집에 있는 족자를 통해 미래 세계로 들어갈 수 있고 거기서 벌어지는 일을 '3분' 이내에 해결해야 한다.

 

중간에 나오는 비유를 가져오자면, 파이프라인의 일부에 녹이 슬거나 하는 경우 전체파이프라인을 갈아 엎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파이프를 추가로 연결해서 거기로 깨끗한 액체를 흘려보내고, 그사이에 오염된 부분을 갈아치우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왜곡된 중간의 부분을 만나기 전 3분짜리 파이프라인을 통해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 3분내에 잘못된 미래를 고쳐서 미래를 지키는 그런 세계관이다.

파이프라인 비유

가장 초반에 나오는 짱구 엄마의 아침 일상을 보여주는 장면도 잘 알려진 명장면 중 하나인데, 이것도 거의 3분에 맞춰서 만든 것도 의도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각설하고 얘기하고자 할려는 건 이 영화를 보면서 머리속을 스쳐간 메시지 두 가지인데 하나는 '현실과 시뮬라크르'에 관한 것과 '정의란 무엇인가?' 두가지이다. 

현실? 시뮬라크르?

시뮬라크르, 한 번쯤 들어봤을 수 있는 용어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에겐 낯선 단어다. 시뮬라크르는 그림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리는 하이퍼리얼리즘과 같은 분야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단어로, 가상의 세계를 이야기 하는 상황에서 종종 등장한다. 여기저기에 있는 정의를 가져다 이야기 하자면, 시뮬라크르는 가상, 거짓 그림 등의 뜻을 가진 라틴어 ‘시뮬라크룸(simulacrum)’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그 유명한 철학자 플라톤이 이데아(Idea) 이론을 설명하며 이 단어가 등장했다. 이데아에 등장하는 동굴의 비유를 가지고 와보자. 어떤 어두운 동굴에서 촛불을 하나 켜면 그 촛불의 불빛은 어떤 사물과 상호작용을 통해 그림자를 지게 만든다. 플라톤은 이데아가 그 실체라면, 현실 세계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복제품이라고 이야기했다. 시뮬라크르는 그 그림자를 따라한 복제의 복제품으로, 이데아 이론에서는 보잘 것 없는 낮은 급의 세계라고 이야기 한 것이다.

 

이러한 시뮬라르크는 플라톤만이 이야기한 내용은 아니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는 시뮬라크르 또한 하나의 중요한 의미가 있는 하나의 동등한 세계로 인정했다.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이라는 책의 저자인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실제 세계(이데아 이론에서는 모사된 것)을 모사하는 것을 통해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하이퍼 리얼리티의 생산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이야기 하기도 했다.

 

영화가 대표적인 예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대부분 실제에 없는 일을 만들어 내서 이를 다시 가상적으로 시각화 한 것이거나, 실제 있는 사건을 다시 재구성하여 촬영하고 그 이야기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이야기를 듣게 하는 그런 것이 아닌가? 결국 한 편의 영화는 그 실체 혹은 그 실체에 의해 만들어진 그림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편의 영화는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만한 영감을 주기도 하고 새로운 지식과 생각을 하게 만드릭도 한다. 이렇게 시뮬라르크가 현실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쉬운 세상이 된 것에는 다양한 기술의 발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고, 어찌되었건 좋은 일이다.

 

물론 필자는 이러한 시뮬라르크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가 더 크다. SNS에 적당한 사진을 올릴 수 있는 감성적인 카페를 찾아 다닌다거나, 평소에는 한 글자 읽지 않던 책을 꺼내 대충 펼쳐두고 사진을 찍는다던가, 행복하지 않은 삶에서 행복함을 연기한다던가 하는 그런 일들 말이다. 본인은 주객전도(主客顚倒) 되는 상황을 싫어한다. 흔히 드는 예시로 본인은 소개팅이라는 것을 알게 모르게 싫어 해왔는데, 그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좋은 사람이 있어서 연애를 하고 싶은 감정이 생기는 것이 주()이고, 연애를 하는 것은 객(客)이다. 그런데 보통 소개팅은 연애를 하고 싶어서 좋은 사람을 찾는 것 같아 알게 모르게 이질감이 들었던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다.

<부리부리 3분 대작전> 속 시뮬라크르

갑자기 쓸 데 없는 철학 이야기과 사견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이와 비슷한 상황이 짱구 극장판에서도 벌어진다.

족자 넘어 미래의 세계에서 짱구네 가족은 미래맨의 힘을 빌려 멋있는 모습으로 바뀔 수 있다. 짱구 아빠는 아저씨의 ET 몸매를 벗어나 빨래판 복근과 근육질 몸매를 가지게 되고, 짱구 엄마는 뱃살과 팔뚝의 지방을 가슴으로 이식하고 피부와 머리카락에도 윤기를 되찾는다. 괴물을 물리칠 수 있는 힘도 주어진다. 그러나 3분이 지나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다시 아저씨 ET 몸매로, 지방은 제자리를 찾아간다.

 

짱구 가족은 족자 넘어의 세계를 좋아하게 된다. 뭐 괴물을 물리치는 힘보다는 외관이 변하는 주객전도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기도 하겠다. 더 나아가 사실상 시뮬라르크인 족자 넘어의 세계에 빠져 현실 세계에서는 컵라면만 먹고 쓰레기 봉투가 잔뜩 쌓여있다.

https://v.daum.net/v/20150920001101900

뭔가 익숙하지 않은가? 아까 이야기한 주객전도의 상황이다. 물론 극장판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주제가 이것과 밀접하지는 않지만, 각본을 쓰면서 분명히 이에 관련하여 뭔가 주제 의식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뭐 몇년전까지는 SNS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시뮬라르크와 현실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많은 이야기를 해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더 재미있는 시뮬라르크가 있다. 바로 가상현실, 메타버스, VR, AR, XR 따위 말이다.

 

메타버스

혹자는 메타버스 기술이 새로운 세상을 열 것이라고, 시공간의 제약이 없는 제2의 세상을 열어 그 곳에서 가치를 창출하고, 경제 활동을 하며 본인의 자아를 실현하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메타버스는 과연 그들의 이야기 처럼 멋진 미래를 가지고 올까?

 

뭐 미래를 알 방도는 없다지만 개인적으로 회의적이다. 현재의 가상현실은 너무 '가상' 가상현실이다. 현실을 모방한 티가 너무 난다. 애초에 시뮬라르크가 성립될려면 현실과 헷갈릴 정도로 비슷해야 그 기능을 하는 경우가 많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만). 그런데 현재 최근의 가상현실은 너무 티나는 가상 현실들이다. 가상 현실에 들어가는 순간 그 곳이 가상현실임을 바로 깨닫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상현실에 푹 빠지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일게다. 결국 '몰입도가 너무 떨어져서 아직은 어렵다'가 첫번째 생각.

 

그렇다면 완전 현실 같은 그래픽을 VR로 구현하는 것에 성공한다면?! 그래도 쉽지는 않다. VR을 착용하는 것은 현실 세계에서 착용 한다는 경험을 제공한다. 현실에서 무언가를 머리에 착용하고 있는 것은 그리 달갑지 않은 경험이다. 실제로 인간의 생체 신호나 변화 등을 웨어러블 디바이스와 같은 것들을 사람에게 부착하거나 착용하게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그리 좋은 사용자 경험을 주지 못한다. 사족이지만 이러한 연유로 remote sensing 관련 분야 연구도 많이 진행되고 있다. 하이퍼 리얼리티를 그래픽으로 렌더링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VR은 아마도 CPU든 RAM이든 GPU든 이런저런 것들이 잔뜩 달려있을테니 무게도 적잖이 나갈게고, 그 과정을 렌더링하며 열은 얼마나 내겠는가?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VR을 착용하는게 달갑지는 않을게다. 실제로 사용자의 경험을 연구를 하는 분야에서 VR 착용에 관한 사용자 경험에 관련된 연구를 매우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물론 나중에 기술이 또 더 발전해서 사용자 경험도 우수한 VR을 만들었다고 생각해보자. 이제 사람들은 VR의 세계에 빠져들면 진짜 세계와 VR 속의 세계를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과연 사람들은 가상의 세상에 현혹되어 실제의 세계를 괄시하는 날이 올까? 음... 여기부터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VR 밖의 세계를 그리워하게 될거다. 아마도? 다른 짱구 극장판인 <어른 제국의 역습>에서도 20세기의 과거의 세상을 그리워 하지만 결국 현실로 돌아왔던 것 처럼 말이다. 

 

결국 메타버스의 발전은 아무 의미가 없는가? 아마도 아닐게다. 연구실에서 AR과 VR, 메타버스를 연구하며 느끼는 것은, 현실 세계에 대한 이해와 이를 디지털의 형태로 바꾸는 것이 현재의 주된 연구 단계인 것으로 보인다. 결국 무언가를 모방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을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극사실주의 화가들은 대부분 어떤 물체를 이렇게 비춰도 보고 저렇게 비춰도 보고, 이런 질감을 씌워보기도 하고 저런 질감을 씌워보기도 하면서 그 대상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메타버스 그 자체보다는 메타버스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현실을 더 잘 이해하고 현실을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시키는데 그 의의가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 든다.

 

다음에 시간이 되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메시지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보겠다...